“제 딸은 이제 아들로 살아갑니다”…18일 팬아시안센터서 경험 공유
전국의 성소수자(LGBT) 커뮤니티는 12일 올랜도 테러사건을 자신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용의자 오마르 마틴은 평소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고, 그가 충성을 맹세한 이슬람국가(IS)는 온갖 극단적인 방법으로 동성애자들을 처형하고 추종자들에게도 폭력을 종용해왔다.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한인 클라라 윤씨는 “모두가 두려워하던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전날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LGBT 자녀를 사랑하는 아시안 부모들의 모임’ 행사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뉴스를 접했다. 윤씨는 오는 18일 12시, 도라빌 팬아시안센터(CPACS)에서도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고,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위협에 대응하는 자세에 관해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윤씨의 외동딸이었던 K는 15살이던 지난 2010년 트랜스젠더 남자로 커밍아웃했고, 지금은 호르몬 치료와 수술을 받고 완전한 남자로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엄마, 사실 난 남자에요”= 외동딸 K는 어려서부터 짧은 머리에 바지를 즐겨입고, 보통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톰보이’였다. 맨해튼에서 살며 미국 대기업에 근무했던 어머니 윤씨는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개방적인 편이었고, 딸에게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식으로 구별되는 행동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 윤씨에게도 K의 커밍아웃은 충격이었다. 그는 “딸에게 ‘네 성 지향성(sexual orientation)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더라도 숨기지 말고 알려만다오’라고 말한적이 있을 만큼 딸이 동성애자이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막상 트랜스젠더일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 돌아보면 ‘힌트’는 여러곳에 있었다. K는 2차 성징이 나타나며 신체가 여성스럽게 성숙하는 것을 못견뎌했다. 그즈음 “말수가 눈에 띄게 적어지고, 학교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고 윤씨는 회상했다. 사춘기에 흔히 나타나는 이유없는 방황을 겪는다고 생각하고 딸을 지켜보며 속을 태웠던 윤씨에게 딸의 커밍아웃은 한편으로는 위안이 됐다. 하지만 “아이가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1년의 기다림= K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른 이들에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알게된 후에도 그는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부모님께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K는 커밍아웃을 한 즉시 호르몬 치료와 수술을 받고 남자로 전환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윤씨와 남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K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대신 마냥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다. 전문가와 상담을 받고,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도 출석하며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럼에도 아이에게 몇번이고 ‘그건 정상이 아닌것 같다’며 상처가 되는 말을 했다. 자신의 존재 기반이 되는 정체성을 무시하는 말이었다”며 “그런 말을 듣고도 상처받지 않고 참고 인내해준 아이에게 오히려 내가 고마웠다”고 털어놨다. 윤씨와 남편은 결국 K를 트랜스젠더 남성으로서 완전히 받아들였다. 그는 “아이를 낳았을 때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할 게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K는 똑같은 자식이고, 앞으로 자신의 육체를 정신과 일치시킨 채 살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 뿐”이라며 “또 사회에 나가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는데, 부모님한테마저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어떤 심정이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손자가 하나 생겼다”= 커밍아웃 1년 뒤, K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이름을 바꿨다. 딸의 성전환 사실을 알리는 것은 어머니 윤씨의 몫이었다. 그는 아들을 가장 잘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먼저 소식을 알리며 일종의 ‘연습’을 시도했다. 뉴욕에 살던 미국인 지인들은 즉시 윤씨 가족들을 지지한다고 위로했지만, 문제는 LA에 살고있는 친척들이었다. 그는 “동생들과 부모님에게 아이의 성전환 사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매년 가족 사진을 찍어 크리스마스 카드로 보내왔는데, 남자의 모습을 한 K가 전보다 더 잘 보이도록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K의 외할머니를 설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손자가 하나 생겼다’며 좋아하신다”고 윤씨는 안도했다. ▶“모두가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졌다”= 올랜도 참사 소식을 접한 윤씨는 아들과 통화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이렇게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비통했다”며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이런 사건으로 주눅들기보다 약자를 보호하고 이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지를 더욱 굳히는 기회가 됐다”고 덧붙였다. 문의 : [email protected] 조현범 기자